김을호 기자
[김을호의 의정포커스] 교육감 선거의 언어가 교실을 흔든다. 디자인=김현주[한국의정신문 김을호 기자]
대한민국 교육감 선거는 늘 ‘교육’보다 ‘진영’이 먼저 등장하는 선거가 되기 쉬웠다. 제도는 정당의 관여를 제한하며 정치적 중립을 내세웠지만, 현실의 선거판에서는 ‘진보·보수’ 프레임이 후보의 교육 전문성을 대신해 유권자의 판단 기준이 되곤 했다. 교육이 이념의 문장으로 번역되는 순간, 교실의 언어는 사라지고 구호만 남는다.
교육감 주민 직선제는 교육자치 확대라는 취지 속에서 도입·확대되어 왔다. 선거관리위원회 자료에서도 교육감 선출 방식이 여러 차례 바뀌어 왔고, 2007년 이후 주민 직선이 본격화된 흐름을 정리하고 있다. 하지만 직선제의 취지가 ‘교육의 전문성과 자치’였다면, 지금의 고민은 “그 취지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로 옮겨가야 한다. 학술 연구에서도 현행 직선제가 낮은 관심·정보 부족, 투표 과정의 왜곡, 민의 왜곡 등 문제를 낳는다는 지적이 누적돼 왔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 공천이 금지된 비정당 선거라는 외피를 갖고 있다. 그러나 유권자 입장에서는 후보 정보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깜깜이 선거’가 되기 쉽고, 선거 이후 정책 성과에 대한 책임 귀속도 흐려진다는 비판이 반복된다. ‘정당이 없으니 중립’이 아니라 ‘정당이 없는데도 비공식 정치만 남는’ 역설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최근에도 교육감 선거의 정당 공천을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되는 모습이 보인다. 정당 공천을 통해 책임정치를 강화하자는 주장과, 헌법이 요구하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해 교육을 정치의 하위 변수로 만들 수 있다는 반론이 충돌한다. 이 논쟁은 찬반을 떠나 한 가지 사실을 드러낸다. 지금의 선거 구조가 ‘후보 검증’과 ‘책임성’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투표율과 관심 문제도 구조의 그림자다. 중앙선관위가 지방선거 투표율을 성별·연령·지역별로 분석해 공개할 정도로(데이터로 관리할 정도로) 참여 격차가 존재하고, 교육감 선거가 상대적으로 “정보 접근이 어려운 선거”라는 지적이 따라붙는다. 교육 정책의 장기성과 전문성을 생각하면, 유권자가 후보를 ‘진영’으로만 구분하게 만드는 구조는 교육자치의 취지를 약화시킨다.
이제 교육감 선거의 질문은 선명해져야 한다. “어느 진영인가”가 아니라 “교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다. 교사를 행정 인력으로 관리할 것인지, 교수 전문직으로 존중할 것인지가 교육의 품질을 좌우한다. 교육감이 해야 할 일은 이념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첫째, 교사의 전문성을 ‘선언’이 아니라 ‘구조’로 보장해야 한다. 잦은 정책 교체와 구호 중심 행정이 반복되면, 교사는 수업과 생활지도를 안정적으로 설계하기 어렵다. 교육감의 리더십은 현장에 무엇을 “더 하라”가 아니라 무엇을 “덜 흔들리게 할 것인가”로 증명돼야 한다.
둘째, 교육의 정치화에 맞서 ‘책임 있는 중립’을 설계해야 한다. 정당 공천을 둘러싼 찬반과 별개로, 최소한 후보 검증과 공약 이행 점검이 공적 시스템으로 작동해야 한다. 후보가 무엇을 약속했고, 무엇을 지켰는지, 예산·조직·성과 지표로 설명하게 만드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래야 ‘비정당’이 ‘비책임’으로 변질되지 않는다.
셋째, 교육자치의 원칙을 흔드는 제도 변경 시도에는 더 엄격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최근 대전·충남 통합 논의 과정에서 교육감 선출 방식을 ‘러닝메이트제’나 ‘임명제’로 바꿀 수 있는 여지를 두는 방안이 거론되자, 교육계 반발이 커졌고 교육부와 시도교육감들이 공식 반대 의견을 낸 바 있다. 선출 방식이 어떠하든 핵심은 동일하다. 교육감 제도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헌법적 요청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현장 안정성과 책임성을 함께 높이는 방향으로 논의돼야 한다.
결국 교육감 선거는 ‘이념 경쟁’이 아니라 ‘전문성 경쟁’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교사의 권위를 세우고, 학생의 학습을 안정시키며, 학부모가 예측 가능한 교육 행정을 경험하게 만드는 교육감이 필요하다.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교실을 정치로부터 떼어내고 교육을 교육의 언어로 되돌릴 줄 아는 교육감이 필요하다. 그 선택이 아이들의 교실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정치다.
한국의정신문 김을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