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기자
김영호 국회 교육위원장과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이 [김영호 TV]에서 대담을 나누고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영호 TV 갈무리
[한국의정신문 김현주 기자]
“AI가 답을 대신해 주는 시대에,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게 될까 가장 걱정된다.”
김영호 교육위원장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한 대담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디지털 기기와 생성형 AI가 일상 깊숙이 들어온 환경에서, 교육이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를 묻는 발언이었다. 그 질문의 끝에서 함께한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과 공통으로 꺼낸 단어가 바로 ‘독서’였다.
이날 정근식 교육감 역시 독서를 단순한 학습 도구로 보지 않았다. 독서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출발점이며, 아이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사유하도록 돕는 가장 기본적인 교육이라는 인식이다. 독서국가라는 개념은 이렇게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편리함이 사고를 대신하는 시대에, 깊이 생각하는 힘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어린 왕자』로 시작한 과학 수업
대담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소개된 장면은 실제 교실에서 이뤄진 수업 사례였다. 김영호 위원장은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진행된 과학 수업 이야기를 꺼냈다. 교과서보다 먼저 책이 놓였고, 그 책은 『어린 왕자』였다. 과학 수업의 출발점으로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선택이었지만, 수업은 그 지점에서 오히려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아이들은 어린 왕자가 살던 작은 별을 떠올리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만약 그 별이 토성이나 금성이라면 환경은 어떻게 달라질까. 중력은 어느 정도일까, 대기는 존재할 수 있을까, 인간이 그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학생들은 책 속 이야기를 과학적 상상으로 옮겨 왔고, AI 기능을 활용해 행성의 환경을 직접 설계해 보기도 했다.
이 수업에서 인상적인 점은 문학과 과학이 억지로 결합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어린 왕자』는 과학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고를 시작하게 만드는 계기였다. 책을 읽고 난 뒤 “왜 그럴까”라는 질문이 먼저 나왔고, 그 질문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이 필요해졌다. 학습의 순서가 뒤집힌 셈이다.
정근식 교육감은 이 사례를 두고 독서가 교과 학습을 돕는 보조 활동이 아니라, 사고의 방향을 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독서를 통해 상상력이 자극되고, 그 상상이 다시 개념 학습으로 이어질 때 아이들은 지식을 외우는 대신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수업은 독서가 교실 안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장면이었다.
독서는 국어 시간이 아니라 사고의 방식이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반복해 강조된 점은 독서를 국어 교과에만 가두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독서는 읽기 능력을 넘어, 생각하는 방식을 만드는 훈련에 가깝다. 짧고 자극적인 정보에 익숙해질수록 깊이 생각하는 시간은 줄어든다. 그래서 책을 통해 한 생각을 오래 붙잡고, 다시 돌아보고, 질문을 남기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김영호 위원장은 독서를 하지 않는다면 결국 AI에 판단을 맡기는 시대가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대로 독서를 통해 사고력을 기른다면,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독서국가는 기술을 거부하자는 선언이 아니라, 기술을 다룰 힘을 기르자는 전략이다.
학교에 여건이 없다면, 도서관을 교실로
대담은 현실적인 대안으로 이어졌다. 모든 학교가 곧바로 충분한 독서 환경을 갖추기 어렵다면, 지역의 거점 도서관을 적극 활용하자는 제안이다. 김영호 위원장은 잠시 들렀다 가는 공간이 아니라, 하루 종일 머물며 수업을 할 수 있는 도서관을 상상해 보자고 말했다.
그 사례로 언급된 곳이 서대문도서관이다. 이곳을 조용히 책만 읽는 공간으로 한정하지 않고, 야외에서는 책을 읽고 이야기할 수 있게 하고, 실내에는 교실형 도서관을 만들어 인근 학교 학생들이 실제 수업을 받는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구상이다. 과학이나 역사 같은 교과 수업을 독서와 결합해 집중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정근식 교육감은 도서관을 공원처럼 열어 두되, 학습이 살아 있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도서관은 보조 시설이 아니라, 학교 교육을 확장하는 또 하나의 교실이 된다.
김영호 국회 교육위원장과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이 함께 AI 시대 독서국가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김영호 TV 갈무리
조용해야 한다는 도서관의 틀을 넘어서
대담에서는 도서관에 대한 인식 전환도 분명히 드러났다. 적극적인 독서를 위해서는 라이브러리 기능에 카페, 음악, 공원 같은 요소가 함께 어우러질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때로는 시끌시끌할 수도 있고, 아이들이 움직이며 책을 만나는 공간도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독서 놀이터’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구현을 위해서는 정숙함만을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는 뜻이다. 대신 지역의 특성과 주민의 요구를 반영해, 어떤 테마의 도서관이 그 지역에 가장 어울리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제안이 뒤따랐다. 하나의 표준 모델이 아니라, 지역마다 다른 독서 공간을 만들자는 방향이다.
결국, 환경 위에 사람이 더해져야 한다
영상에서 제시된 수업과 도서관 활용 구상은 무엇보다 환경의 중요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책을 읽기 좋은 공간, 수업이 가능한 도서관 구조, AI와 디지털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은 독서교육의 출발 조건이다. 실제로 『어린 왕자』를 과학 수업으로 확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과 기술 환경이 먼저 갖춰져 있었다.
그러나 그 환경이 곧바로 교육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간과 기술, 독서 환경이 아무리 잘 마련돼 있어도, 이를 수업으로 엮고 학습 경험으로 설계할 사람이 없다면 독서교육은 일회적 체험에 그치기 쉽다. 교과 흐름에 맞는 책을 고르고, 질문을 설계하며, 독서와 수업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일은 단순한 관리나 보조 업무의 영역이 아니다. 전문성과 교육적 판단이 함께 요구되는 과정이다.
이 지점에서 독서국가 논의는 자연스럽게 전문 인력 배치의 문제로 이어진다. 사서교사와 같은 전담 인력이 있을 때, 공간은 교실이 되고 기술은 도구가 되며 독서 환경은 학습으로 작동한다. 반대로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잘 갖춰진 도서관과 시설조차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 채 머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인력 배치의 격차가 존재한다. 특히 중학교 단계에서 전담 인력이 없는 학교가 많고, 도서관 운영이 행정 업무 수준에 머무는 경우도 있다. 그 결과 독서교육은 학교 여건이나 교사의 개인적 노력에 따라 편차를 보이게 된다.
영상 속 사례가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공간과 기술, 환경이 갖춰졌을 때 교육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것이 일상이 되기 위해서는 전문 인력이 함께 배치돼야 한다는 과제도 함께 드러난다. 독서국가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서 끝나는 정책이 아니라, 그 인프라를 교육으로 완성할 사람을 어떻게 세우고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다.
독서국가는 선언이 아니라 선택이다
이 대담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생각에 이르게 된다. 독서교육은 몇몇 학교의 의욕적인 시도나 인상적인 수업 장면만으로는 오래 갈 수 없다는 점이다. 『어린 왕자』로 과학을 배우고,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내며 수업을 확장하는 장면이 특별해 보이는 이유도, 그것이 아직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이 의미를 가지려면, ‘잘된 사례’로 남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가능한 교육의 기본 모습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대담의 끝에서 다시 언급된 것이 생애주기별 독서교육이었다. 유아기부터 학교 교육을 거쳐 지역과 삶으로 이어지는 독서의 흐름이 자리를 잡을 때, 독서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생활이 된다. 그렇게 형성된 생활의 힘이 독서마을을 만들고, 독서도시로 이어지며, 결국 독서국가로 확장된다. 이는 새로운 구호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이미 가능성이 확인된 방향을 일부가 아닌 전체의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에 가깝다.
독서교육이 제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더 많은 행사를 여는 일이 아니다. 생각하는 시간을 교육의 기본값으로 두고, 그 선택을 학교와 지역, 정책의 구조 속에 차근차근 안착시키는 일이다. 대담의 마지막이 오래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서국가는 말로 선언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독서를 선택하는 결정이 교육과 정책의 현장에서 반복될 때, 그 방향은 비로소 한 나라의 모습으로 자리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