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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사회 읽기] 두쫀쿠로 이어진 헌혈 오픈런, 달콤함 뒤에 남는 질문
  • 기사등록 2026-01-20 23:28:28
  • 기사수정 2026-02-01 18:3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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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사회 읽기] 두쫀쿠로 이어진 헌혈 오픈런, 달콤함 뒤에 남는 질문.  디자인=김현주 기자

[한국의정신문 김현주 기자]


요즘 헌혈의집 앞 풍경은 예전과 사뭇 다르다. 이른 시간부터 줄을 서는 모습이 낯설지 않고, 그 이유가 ‘헌혈 참여’보다 ‘두바이 쫀득 쿠키’, 이른바 두쫀쿠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인기 디저트를 받기 위해 헌혈의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그리고 이를 두고 ‘헌혈 오픈런’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한 상황은 지금의 혈액 수급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혈액 보유량이 적정 기준을 밑도는 상황에서 대한적십자사가 선택한 방식은 분명 현실적이었다. 젊은 층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트렌디한 요소를 활용했고, 실제로 헌혈 참여자는 눈에 띄게 늘었다. 헌혈이 오랜만에 SNS와 일상 대화 속 화제가 됐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헌혈의 필요성을 알리는 데 있어 ‘관심’ 자체가 줄어든 상황을 감안하면, 이 이벤트는 분명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 장면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긴다. 헌혈이 쿠키와 맞바꿀 수 있는 행위로 인식되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물음이다. 혜택이 있을 때는 몰리고, 사라지면 발길이 끊기는 구조라면 헌혈은 언제든 중단될 수 있는 선택지로 남는다. 두쫀쿠가 사라진 뒤에도 헌혈의집 앞에 같은 풍경이 이어질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헌혈 참여가 줄어든 이유를 개인의 이기심이나 무관심으로만 돌리는 시선은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구조적인 변화가 이미 오래전부터 누적돼 왔기 때문이다. 저출산으로 인해 헌혈 가능 인구 자체가 감소했고,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학교 헌혈이 중단되면서 ‘헌혈을 처음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생겨났다. 과거처럼 교실에서 자연스럽게 헌혈을 접하던 경험이 끊긴 것이다.


헌혈은 한 번의 설명이나 캠페인으로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운 행위다. 몸에 바늘을 꽂고 시간을 내야 하는 경험은 생각보다 높은 심리적 문턱을 가진다. 그렇기에 첫 경험이 중요하다. 그 첫 경험이 사라진 상태에서 성인이 된 청년들에게 헌혈을 요구하는 것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을 익숙하게 가길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군부대 헌혈 환경 변화 역시 영향을 미쳤다. 과거 혈액 수급을 떠받치던 주요 축이 점차 약해졌고, 그 공백을 대체할 새로운 구조는 아직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다. 여기에 겨울철이라는 계절적 요인까지 더해지며 혈액 부족은 반복되는 연례 뉴스가 됐다. 문제는 이 상황이 더 이상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두쫀쿠 증정은 단순한 이벤트라기보다 하나의 신호로 읽힌다. 헌혈이 그만큼 일상에서 멀어졌다는 신호다. 헌혈이 특별한 날, 특별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관심을 끌기 위해 더 자극적인 방식이 동원되는 현실이다.


그러나 헌혈은 본래 그런 행위가 아니다. 누군가의 생명을 지탱하는 필수적인 사회적 행동이며, 반복될 때 의미를 갖는다. 헌혈이 ‘착한 사람만 하는 일’이나 ‘여유 있는 사람이 선택하는 일’로 인식되는 순간, 지속성은 사라진다. 헌혈이 일상이 되기 위해서는 도덕적 호소보다 구조적 설계가 필요하다.


지속적인 헌혈은 보상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쿠키나 기념품은 첫 문을 여는 계기가 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문을 붙잡아 둘 수는 없다. 정기 헌혈자에 대한 사회적 존중, 헌혈 기록이 개인의 삶에서 의미 있는 이력으로 남는 구조, 헌혈 경험이 자연스럽게 다음 참여로 이어지는 환경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청소년기부터 헌혈을 접할 수 있는 교육적 연결도 중요하다. 헌혈을 단순한 봉사활동이 아니라 사회를 유지하는 시민의 역할로 인식시키는 언어가 필요하다.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인식 전환 없이는 헌혈은 늘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미 기술적 기반은 마련돼 있다. 모바일 앱을 통해 헌혈 이력이 관리되고, 접근성도 과거보다 나아졌다. 이제 필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서사다. 헌혈이 몇 유닛이 아니라 누구의 삶과 연결됐는지, 한 번의 참여가 어떤 연대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경험이 축적될 때 행동은 반복된다.


두쫀쿠는 헌혈의 문을 여는 열쇠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문 안으로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게 만드는 힘은 쿠키가 아니라 경험과 인식이다. 헌혈이 ‘한 번 해본 일’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하는 일’이 되기 위해서는, 반짝이는 이벤트보다 훨씬 느리고 꾸준한 사회적 설계가 필요하다.


혈액은 저장할 수 없는 자원이고, 헌혈은 미룰 수 없는 연대다. 두쫀쿠로 시작된 관심이 일시적 소동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작은 유행이 헌혈을 다시 일상의 자리로 되돌리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한국의정신문 김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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