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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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정신문 장선영 기자]
정치는 늘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놓을 수 있는 것’에서 그 품격이 드러난다. 그러나 권력의 자리에 오를수록 사람은 오히려 내려놓는 법을 잊는다. 더 오래, 더 많이, 더 강하게 붙잡고 싶어진다. 그 순간부터 정치는 방향을 잃고, 권력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고통의 뿌리는 분명하다. 집착이다. 석가모니는 인간이 괴로워지는 이유를 외부 환경에서 찾지 않았다. 욕망 그 자체보다, 욕망에 매달리는 마음이 고통을 만든다고 보았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괴로운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괴롭다”는 가르침은 오늘날 정치의 풍경과도 놀랍도록 닮아 있다.
집착은 판단력을 흐린다. 권력에 대한 집착은 특히 그렇다. 자신이 쌓아 올린 성과, 지지 기반, 명분에 매달릴수록 현실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목소리는 소음이 되고, 경고는 공격으로 해석된다. 이때 정치인은 더 강한 언어를 선택하고, 더 단단한 진영 논리를 구축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렇게 움켜쥘수록 권력은 더 빠르게 무너진다.
불교의 가르침에서 집착은 ‘아집(我執)’으로 이어진다. 나의 생각, 나의 판단, 나의 방식이 옳다는 확신이다. 정치에서 아집은 매우 위험하다. 공적 영역에서의 결정은 언제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데, 스스로를 절대화하는 순간 수정과 조정의 길은 막힌다. 그때부터 권력은 유연성을 잃고 경직된다. 그리고 경직된 권력은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
권력은 본래 수단이다. 공동체를 안정시키고, 갈등을 조정하며, 더 나은 질서를 만들어가기 위한 도구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권력은 목적이 된다. 정책보다 자리가 중요해지고, 책임보다 유지가 앞선다. 이 지점에서 집착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제거하려 하고, 비판을 경청하기보다 통제하려 든다. 정치가 ‘사람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자리를 지키기 위한 방어’로 바뀌는 순간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오래 지속된 권력의 공통점은 의외로 단순하다. 스스로를 절제할 줄 알았다는 점이다. 내려올 때를 알았고, 물러날 수 있는 출구를 열어두었다. 반대로 실패한 권력은 대부분 ‘조금만 더’라는 욕망에서 무너졌다. 조금만 더 연장하고, 조금만 더 밀어붙이고, 조금만 더 통제하려다 결국 모든 것을 잃는다.
역사는 권력추구형 인물들의 서사로 가득하다. 예컨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혼란에 빠진 프랑스를 안정시키고 법과 행정 체계를 정비한 뛰어난 지도자였다. 그는 능력 중심의 인재 등용과 효율적 국가 운영이라는 분명한 장점을 지녔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집착은 그를 멈추지 못하게 했다. 끝없는 정복 전쟁과 제국 유지에 대한 집착은 결국 프랑스를 소모시키고, 그 자신도 유배라는 비극적 결말을 맞게 했다. 그의 몰락은 무능이 아니라 ‘놓지 못함’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공화정 말기의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탁월한 정치적 역량을 갖춘 인물이었다. 그러나 종신 독재관이라는 지위는 그를 동료 시민이 아닌 위협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권력을 안정시키기 위한 선택이 오히려 공포를 낳았고, 결국 그는 암살당했다. 집착은 권력을 지켜주지 못했고, 오히려 권력을 무너뜨리는 명분이 되었다.
동양에서도 비슷한 사례는 반복된다. 진시황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강력한 군주였다.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하고 중앙집권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점은 분명한 업적이다. 그러나 불로장생에 대한 집착, 권력 유지를 위한 과도한 통제와 탄압은 민심을 잃게 만들었다. 그의 사후 진나라는 빠르게 붕괴되었다. 강력한 권력은 있었지만, 지속 가능한 정치는 아니었다.
이 인물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능력도 있었고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권력을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의 구조는 갖추지 못했다. 석가모니의 시선으로 본다면, 이들은 욕망을 가진 것이 아니라 욕망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권력은 더 이상 공동체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지탱하는 유일한 기둥이 되어버렸다.
집착이 강해질수록 권력은 경직된다. 경직된 권력은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가지 못한다. 비판은 반역으로 해석되고, 조언은 위협으로 받아들여진다. 결국 권력은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석가모니가 말한 고(苦)는 이렇게 정치의 장에서도 반복된다. 집착은 고통을 만들고, 그 고통은 공동체 전체로 확산된다.
반대로 오래 지속된 권력의 특징은 의외로 단순하다. 스스로를 절제할 줄 알았고, 물러날 수 있는 출구를 열어두었다. 권력을 ‘내 것’이 아니라 ‘맡겨진 것’으로 인식했다. 이러한 태도는 정치인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로부터 신뢰받게 만든다. 붙잡고 있는 것이 적을수록 흔들릴 것도 적다.
정치는 결국 마음의 기술이다. 제도보다 먼저 다스려야 할 것은 마음이고, 상대보다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자신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오늘날 정치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 권력은 반드시 흔들린다. 반대로 집착을 내려놓은 권력만이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정심(正心)은 정치의 장식이 아니라 토대다. 권력을 쥔 손보다, 그 손을 움직이는 마음이 먼저 바로 서야 한다. 정치가 다시 이 오래된 진실을 기억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