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라 기자
부산시청 1층 '들락날락' 독서·문화 프로그램 모습. 사진=부산시
[한국의정신문 김미라 기자]
독서 정책이 도시의 얼굴을 바꿀 수 있을까. 부산은 이 질문에 비교적 분명한 답을 내놓고 있다. 책을 ‘공부’의 영역에서 꺼내 ‘놀이’와 ‘경험’, 그리고 ‘도시 문화’의 중심으로 옮기며, 독서를 새로운 공공정책의 축으로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2026년을 향한 부산의 독서 정책은 ‘읽는 도시’를 넘어 체험하고 성장하는 독서 도시라는 새로운 모델을 향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부산광역시 시청 어린이복합문화공간 ‘들락날락’이 있다. 부산시는 2026년 한 해 동안 이 공간을 거점으로 책과 예술, 자연을 결합한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할 계획이다. 그림책 작가와 함께하는 책놀이,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빛그림 교실’, 작가와 함께하는 글쓰기 지도, 독서 연계 예술체험 등 연간 30여 종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이는 들락날락이 단순한 어린이 놀이 공간을 넘어, 독서를 매개로 한 성장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산의 전략은 명확하다. 책은 조용히 앉아 읽기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만지고 느끼며 함께 즐기는 문화라는 인식 전환이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읽고, 그림과 몸짓으로 표현하며, 자연 속에서 상상력을 확장한다. 독서는 놀이가 되고, 놀이는 배움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경험은 유아·아동기의 일회성 체험에 그치지 않고, 평생 독서 습관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키운다.
여기에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점도 부산 독서 정책의 특징이다. 들락날락에는 책을 읽어주는 로봇과 AR 동화 콘텐츠, 디지털 체험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는 종이책과 디지털을 대립시키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대가 자연스럽게 책과 연결되도록 설계된 독서 환경이다. 부산은 독서를 기술과 경쟁시키지 않고, 경험 중심으로 조화시키고 있다.
부산의 독서 정책은 공공 공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부산도서관을 중심으로 지역 서점과의 협력 프로그램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지역 서점에서 진행되는 저자와의 만남, 책쓰기 체험, 필사 프로그램 등은 독서 활동을 생활권으로 끌어들이며, 동네 서점이 다시 지역 독서 공동체의 거점으로 기능하도록 돕고 있다. 이는 독서 정책을 시설 중심에서 지역 공동체 중심으로 확장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부산은 2026년 세계도서관대회(WLIC) 개최 도시로 선정되며, 글로벌 독서·정보문화의 중심 무대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AI와 디지털 전환, 미래 도서관의 역할을 논의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행사는 부산의 독서 정책을 지역 차원을 넘어 국제적 담론의 장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제 부산의 독서 정책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미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는 정책을 일회성 사업이 아닌 지속가능한 도시 전략으로 정착시키는 일이 과제로 남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독서 정책을 아동 중심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청소년의 비판적 읽기와 토론, 청년과 중장년의 평생 독서, 시니어 문해력 강화로 이어지는 생애주기 전반의 독서 정책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학교 안에서 이뤄지는 독서교육과 도시 곳곳의 독서 공간이 더욱 긴밀하게 연결돼야 한다. 들락날락과 공공도서관, 학교 수업이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독서는 체험에서 교육으로, 교육에서 삶으로 이어진다. 학생들의 독서 결과물을 도시 공간에서 공유하고, 교사와 사서, 지역 문화 인력이 함께 참여하는 구조는 독서 정책을 공교육의 연장선으로 확장하는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될 것이다.
지역 서점과 문화기관을 독서 정책의 동반자로 세우는 일도 중요하다. 서점이 단순한 판매 공간을 넘어 지역 독서 공동체의 중심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제도적·재정적 지원을 강화한다면, 독서 정책은 문화 활성화를 넘어 지역 경제와 공동체 회복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세계도서관대회 개최라는 국제적 계기를 살려 다언어 독서 프로그램과 국제 작가 교류, 글로벌 독서 축제를 정례화한다면 부산은 명실상부한 국제 독서 도시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공부의 도구에서 놀이와 경험의 영역으로 옮긴 부산의 선택은 분명 방향이 옳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정책을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얼마나 넓게 확장하느냐다. 책으로 놀고, 예술로 자라며, 세계와 연결되는 도시. 부산은 지금 ‘책 읽는 대한민국’이 나아갈 또 하나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