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기자
AI 시대, 인간은 퇴보하지 않는다 ― 사고가 바뀌는 시대, 질문이 교육이 된다.
[한국의정신문 김현주 기자]
2026 전미경제학회에서 석학들이 가장 주목한 주제는 단연 인공지능이었다. AI가 생산성을 얼마나 끌어올릴 것인가, 고용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경제 성장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공통된 전망은 비교적 분명했다. AI를 중심으로 사회의 생산성과 지적 능력은 전반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러한 논의가 확산될수록 동시에 제기되는 우려가 있다. AI가 인간의 사고를 대신하면서 인간은 점점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인간의 지적 능력이 오히려 퇴화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걱정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방향을 조금 바꿔볼 필요가 있다. 인간이 어리석어지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의 방식이 바뀌고 있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전환을 경험한 적이 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 사람들은 가족과 친구, 거래처의 전화번호를 수십 개씩 외웠다. 지금은 대부분의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인이 과거보다 기억력이 떨어진 존재가 되었거나 지적으로 퇴보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기억의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외우는 대신 저장하고, 불러오는 방향으로 사고 과정이 이동했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계산을 덜 하고, 정보를 덜 외우게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사고의 퇴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무엇을 묻고,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라는 사고의 상위 단계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 전환의 핵심에 ‘질문’이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사회를 움직인 변화는 언제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내가 빛의 속도로 움직이면 무엇을 보게 될까”라는 질문을 붙들고 오래 생각했다.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기존의 물리 법칙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 사고의 출발점이었다. 그는 답을 서둘러 찾지 않았고, 질문에 머무는 시간을 견뎠다.
아인슈타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모두가 당연하게 믿던 상식을 의심했고, 스티브 잡스는 기술의 방향 자체를 다시 묻는 질문을 던졌다. 이들의 공통점은 정보를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질문을 쉽게 넘기지 않았다는 데 있다.
AI 시대의 질문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이제 질문은 ‘정답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고를 확장하기 위한 장치’가 된다. AI에게 답을 요구하는 순간에도 인간은 선택해야 한다. 어떤 전제를 깔 것인가, 어떤 관점을 배제할 것인가, 이 답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는 무엇인가를 묻는 역할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이 지점에서 교육의 역할이 다시 중요해진다. AI 활용 능력의 격차는 단순한 기술 격차를 넘어 사고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질문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커질 가능성이 크다. AI를 잘 다루는 사람보다, AI에게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아는 사람이 더 큰 힘을 갖는 사회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강조해야 할 것은 AI 사용법이 아니라 질문하는 능력이다. 당연한 사실을 한 번 더 의심하는 힘,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 보는 사고, 다른 관점에서 다시 묻는 태도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지적 활동이다. AI는 그 질문을 대신 만들어 주지 않는다.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다. 사고의 일부를 맡아주는 도구에 가깝다. 외우는 일을 덜어준 스마트폰이 인간의 지능을 낮추지 않았듯, AI 역시 인간을 어리석게 만들지는 않는다. 다만 생각의 구조를 바꾼다. 그 변화의 갈림길에서 교육이 놓치지 말아야 할 중심은 분명하다.
AI 시대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질문의 질이다. 사회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일수록, 질문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힘은 더욱 귀해진다. 이제 교육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답을 가르치는 교육에서 벗어나, 질문을 만들어내는 교육으로 방향을 옮기는 일이다. 그 질문이야말로 AI 시대에도 인간을 중심에 세우는 가장 강력한 지적 도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