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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을호의 의정포커스] 권력자의 미친 열정,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 권력의 폭주를 막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
  • 기사등록 2025-05-02 16:53:45
  • 기사수정 2025-05-02 16:5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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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정신문 김현주 기자]


권력은 단순한 통치 수단을 넘어, 그 자체로 확장을 추구하는 속성을 지닌다. 특히 권력자가 강한 신념과 열정을 갖고 이를 자신의 정당성 근거로 삼을 경우, 권력은 목적 달성을 넘어 집착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이는 곧 민주주의의 균형을 흔들고, 사회 전체에 위험 신호를 발생시킨다.

역사는 이를 뼈아프게 증명한다. 권력자의 과도한 열정이 국가를 파국으로 이끈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문제는 이러한 ‘미친 열정’이 종종 정당한 통치 의지로 포장되며, 그 과정에서 시민과 제도는 무력화된다는 점이다.


자기 확신의 덫에 빠진 권력자

강한 신념을 가진 권력자는 자신의 판단이 항상 옳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는 민주적 절차나 타인의 의견을 무시하게 만들고, 결국 독단과 독선으로 이어진다. 권력을 쥔 이가 “내가 옳다”는 확신에 빠지는 순간, 경청은 멈추고 결정은 독점된다. 이러한 자기 확신은 열정이 아닌 광기로 전락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정치 지도자는 물론, 대기업의 최고경영자, 영향력 있는 종교인, 심지어 공공 조직의 수장에 이르기까지 이 같은 경향은 보편적이다. 조직 내 다양한 견해가 사라지고, 아첨과 충성만이 남을 때, 권력의 열정은 더 이상 공동체의 것이 아니다.


견제 기능의 마비, 사회 전체를 위협하다

권력자의 열정이 위험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주변의 견제 기능이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권력을 둘러싼 인적 구조가 충성 일색으로 변질되면, 비판은 금기어가 되고, 반대자는 적으로 낙인찍힌다. 결국 권력자는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게 되고, 비판의 부재는 폭주를 가속화한다.


여기에 대중의 맹목적 지지가 결합하면, 상황은 더욱 위험해진다. 카리스마적 권력자가 열정적으로 민중을 호소할 때, 이 열정은 선동으로 변질되기 쉽다. 비판적 사고는 사라지고, 다수는 감정의 흐름 속에 판단을 맡긴다. 전체주의가 형성되는 방식은 언제나 이와 유사했다.


권력의 열정,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권력자의 과도한 열정이 사회를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다층적인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 제도적 장치만큼이나 시민의 의식과 언론의 자유도 핵심적이다.


첫째, 법과 제도를 통한 견제

삼권분립은 단지 국가 권력 구조의 원칙이 아니라, 권력자의 감정과 열정을 제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이다. 권력이 어느 한 기관에 집중될 경우, 폭주의 가능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독립적인 사법부, 책임 있는 의회, 공정한 선거 제도는 권력자의 행보를 제한하는 현실적 도구다.


둘째, 언론과 공론장의 기능 강화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는 창이며, 공론장은 민주주의의 안전판이다. 권력자가 아무리 강한 신념과 열정을 주장하더라도, 이를 다양한 시각에서 검토하고 비판할 수 있는 언론 환경이 존재해야 한다.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사회에서는 권력자의 독주가 제한된다.


셋째, 시민의 정치적 참여와 감시

무관심한 시민은 권력의 독단을 방조하게 된다. 유권자의 참여와 관심은 권력자에게 책임감을 부여하며, 그 열정이 공적 책무로 귀결되도록 유도한다. 선거, 시위, 청원, 온라인 공론화 등은 시민이 행사할 수 있는 감시의 수단이며, 이는 권력의 방향을 바로잡는 실제적 힘이 된다.


넷째, 권력자의 자기 성찰 유도

가장 이상적인 통제는 내부에서 시작된다. 권력자가 자신의 열정과 권한에 대해 스스로 성찰하고, 윤리적 기준을 유지할 수 있는 문화와 시스템이 필요하다. 권력의 순환, 임기제, 책임 있는 퇴임 구조 등은 한 개인이 권력을 과도하게 독점하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장치다.


권력자의 열정을 막지 못했을 때

권력자의 열정이 통제되지 않고 폭주할 경우, 민주주의는 가장 먼저 희생된다. 강한 신념과 비전으로 시작된 통치는 점차 절차를 무시하고, 비판을 억압하며, 다른 목소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기울게 된다. 그 결과는 정치적 독재, 사회적 분열, 언론의 침묵, 소수자에 대한 탄압이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역사 속 수많은 지도자들은 처음에는 ‘개혁’과 ‘정의’를 외쳤지만, 결국 권력의 자기 확신과 대중의 맹목적 지지가 결합되면서 체제를 독점했다. 히틀러는 경제 회복과 국가 자존심 회복이라는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렸고, 스탈린은 혁명이라는 이상을 내세워 전체주의 통제를 일상화했다.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는 민족주의와 개발 독재의 열정으로 국가를 철저히 사유화했다. 이들은 모두 강한 열정으로 출발했지만, 그 열정을 통제할 장치가 무력화되었을 때, 사회는 공포와 침묵의 시대를 맞이했다.


이러한 결과는 단지 지도자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을 견제하지 못한 제도와, 이를 묵인하거나 방조한 시민사회의 실패이기도 하다. 경계심을 잃은 민주주의는 권력자의 열정 앞에서 너무 쉽게 무너진다. 과도한 열정보다 더 위험한 것은, 그것을 멈추지 못한 공동체의 침묵이다.


균형을 위한 경계

권력자의 열정은 때로는 사회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고, 정체된 질서를 개혁하며, 국민의 기대를 하나로 모으는 힘이 된다. 문제는 그 열정이 제도적 통제와 집단적 숙고 없이 단독 질주할 때, 그것은 곧 독선과 배제가 되고 만다는 점이다. 단호한 추진력은 공동체를 위한 추진력이 될 수도,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폭주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권력의 열정이 진정한 공공성과 헌신으로 이어지려면, 그것을 견제하고 조율하는 다층적 장치들이 작동해야 한다. 입법과 사법, 언론과 시민사회는 권력자 개인의 확신이 공적 책임의 이름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균형을 맞춰야 한다. 단 한 사람의 비전이 국가 전체를 끌고 갈 수 있다는 착각이 자리잡는 순간, 민주주의는 이미 위태롭다.


시민은 관찰자에 머물지 말고 감시자이자 조정자여야 한다. 언론은 침묵하지 않고 질문해야 하며, 제도는 무력화되지 않고 작동해야 한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스스로를 견제하지 않기 때문에, 그 균형의 고삐는 사회 전체가 함께 쥐어야 한다.


우리가 더 냉철한 이성과 분별력을 지닐 때, 권력의 열정은 독선이 아니라 공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바로 그 긴장과 감시의 지점에서, 민주주의는 숨을 쉬고 역사는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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