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라 기자
조현 외교부 장관이 30일 오전 경북 경주시 소노캄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외교통상합동각료회의' 개회식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제공
[한국의정신문 김미라 기자]
대한민국이 20년 만에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의장국을 맡아, 글로벌 통상질서 변화 속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새로운 협력 방향을 제시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제36차 APEC 외교·통상 합동각료회의(AMM)가 10월 29일부터 30일까지 경북 경주 소노캄호텔에서 열렸다. 회의는 조현 외교부 장관과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공동 주재했으며, APEC 21개 회원국의 외교 및 통상 각료들이 참석했다.
이번 회의는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진행된 최종 점검 성격의 회의로, ▲디지털 협력을 통한 지속가능한 번영 ▲AI 등 신기술을 활용한 공급망 회복력 강화 ▲변화하는 글로벌 통상질서 속에서의 APEC과 WTO 역할 등을 주요 의제로 다뤘다. 현재 ‘합동각료성명’ 채택이 추진 중이며, 이번 회의 결과는 정상회의로 이어질 예정이다.
조현 장관은 개회사에서 “지정학적 긴장과 경제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아태지역이 직면한 성장률 둔화, 기후위기, 인구구조 변화 등 복합적 도전에 공동 대응해야 한다”며 회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올해는 APEC의 주요 중장기 이니셔티브가 마무리되는 시점으로, 향후 협력의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해”라며 “한국이 의장국으로서 제안한 인공지능(AI) 협력, 인구구조 변화 대응, 문화창조산업 육성 등 주요 현안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APEC 각료들의 역할은 역내 공통의 도전과제에 협력적 해법을 찾는 것”이라며 “이번 회의가 APEC의 미래 비전과 연대 강화를 위한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전례 없는 통상 불확실성 속에서 APEC이 다시 한 번 연대와 협력정신을 보여줄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세계 8위 무역국으로 성장한 것도, APEC이 세계 교역의 절반을 차지하는 거대 협력체로 발전한 것도 모두 ‘개방의 힘’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새로운 경제 번영의 모멘텀을 창출하기 위해 WTO 중심의 다자무역체제를 강화하면서, ‘개방적 복수국간 협력(Plurilateral Cooperation)’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AI 등 혁신기술을 통한 공급망 회복력 강화가 시급하다”며 “APEC 차원에서 실질적인 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회의는 두 개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세션 1(혁신과 번영)에서는 디지털 전환을 통한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과 자연재해·식량안보 등 역내 주요 도전 과제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한국은 인구구조 변화 대응을 위한 디지털 기술 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APEC 미래번영기금’을 통해 청년 역량 강화와 인재 육성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은 기술 발전이 성장과 포용성을 동시에 이끌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APEC AI 이니셔티브’를 소개했다. 이 이니셔티브는 인공지능 협력을 통해 회원국 간 기술 격차를 줄이고, 지속가능한 공동 번영을 실현하기 위한 협력 플랫폼으로 주목받았다.
세션 2(연결과 회복)에서는 공급망 안정성과 경제안보 강화를 위한 전략이 집중 논의됐다. 한국은 AI 기반 공급망 조기경보시스템 운영 경험을 공유하고, APEC 차원의 ‘공급망을 위한 AI 프로젝트’ 추진을 제안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사업은 내년부터 한국 정부와 APEC 사무국 공동펀드를 통해 본격 추진될 예정이며, 대·중소기업 간 공급망 관리에서의 기술 격차를 해소하고, 역내 생산망의 회복력과 적응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국은 이번 회의에서 WTO 개혁 필요성과 함께, 복수국간 협력체계 확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RCEP, CPTPP, DEPA 등 메가무역협정이 잇따라 발효되는 가운데, APEC이 새로운 통상규범을 실험하고 조율하는 ‘아이디어 인큐베이터’로서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한국은 인구 고령화와 기술 발전이라는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청년세대의 참여와 교육투자 확대를 강조했다. APEC 미래번영기금을 통해 회원국 청년 간 교류와 혁신인재 양성을 지원하고, 역내 사회적 포용성을 강화하겠다는 구체적 의지를 밝혔다.
올해 한국은 2005년 이후 20년 만에 APEC 의장국을 맡아 회의를 주도하고 있다. 그동안 해양, 교육, 고용 등 14개 분야별 장관회의를 개최하며 AI 협력, 인구구조 변화, 문화산업 육성 등 다양한 정책 논의를 심화시켰다.
이번 합동각료회의는 정상회의에 앞선 최종 점검회의로 평가된다. 다자무역체제 강화, 디지털 전환, 청년 역량 강화 등 올해 논의된 주요 의제들이 정상회의 공동선언문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번 회의를 통해 한국은 글로벌 협력의 중심축으로서의 리더십을 입증했다”며 “AI, 청년, 포용, 공급망 등 새로운 키워드를 중심으로 APEC 협력을 주도하며, 지속가능한 번영의 비전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합동각료회의를 계기로, 한국은 ‘디지털 혁신과 포용적 성장의 조화’라는 APEC의 새로운 비전 아래, 21개 회원국과 함께 지속가능한 협력체계 구축을 이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