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기자
농업·먹거리 관련 시민단체와 국회의원들이 한목소리로 농림축산식품부의 무책임한 행정을 규탄하며 실경작자 보호를 촉구하고 나섰다. 사진=한살림연합
[한국의정신문 김현주 기자]
가짜 경영체 등록으로 인한 친환경 임차농 피해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정부의 실효적 대책이 지연되며 현장 농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이에 농업·먹거리 관련 시민단체와 국회의원들이 한목소리로 농림축산식품부의 무책임한 행정을 규탄하며 실경작자 보호를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친환경농업협회,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 환경농업단체연합회, 두레생협연합회, 농민의길, 전국먹거리연대, 녹색소비자연대 등 10여 개 단체는 지난 10월 28일 오전 9시 30분 국회 본청 앞에서 ‘친환경 임차농 보호대책 마련 및 제도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의 농식품부 종합감사 직전에 진행되어, 정부의 대책 부재를 강하게 비판하는 자리로 이어졌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정부가 허위로 경영체를 등록한 ‘가짜 농부’를 사실상 방치하면서도, 실제 농사를 짓는 ‘진짜 농부’를 단속 대상으로 삼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친환경농업협회 김상기 회장은 “임차농 보호 없이 친환경농업 확대를 말할 수 없다”며 “전체 농민의 절반이 임차농인 현실에서 실경작자가 제도 밖으로 밀려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정부의 ‘친환경농업 두 배 확대’ 공약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친환경 임차농 보호를 위한 1만인 시민 서명운동’의 서명부가 국회 농해수위 소속 의원들에게 전달됐다. 임미애, 이원택, 김선교 국회의원 등이 직접 참석해 시민 서명부를 전달받으며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임미애 의원은 “직불금 부정 수급을 단속한다는 명분 아래 실제 농민이 농지에서 내쫓기고 있다”며 “행정 편의가 아닌 농정 철학과 일관성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원택 의원은 “실경작자 개념을 법체계 안에 포함시키는 것이 핵심”이라며 “친환경 임차농이 정당하게 보호받는 농업 구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선교 의원 또한 “양평군수 시절부터 친환경농업 특구를 추진해온 경험을 살려, 농해수위 간사로서 농지 임대차 우대 법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친환경 임차농 보호를 위한 1만인 시민 서명운동’ 서명부를 국회 농해수위 소속 의원들에게 전달했다. 왼쪽부터 이원택 국회의원, 임미애 국회의원, 김선교 국회의원. 사진=한살림연합
그러나 현장의 상황은 여전히 심각하다. 실제로 농지를 임차해 농사짓는 친환경 농민들은 직불금과 정부 지원에서 배제된 채, 허위 등록 지주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최근 농관원 일부 지소에서는 경영체 등록자와 인증자가 다르다는 이유로 친환경 인증을 정리하라는 통보가 내려지며, 다수의 농민이 자진 인증 취소를 고민하는 상황이다. 실경작자는 단속 대상이 되고, 서류상 ‘가짜 농부’는 혜택을 누리는 역전된 행정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임차농은 “불법을 바로잡자는 원칙에는 찬성하지만, 정직한 농민이 희생되는 단속은 결코 정의가 아니다”며 “지주는 계약을 끊고 빠져나가지만, 친환경 농민은 수년간 쌓아온 인증과 신뢰를 하루아침에 잃는다”고 호소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영이 회장은 “농식품부는 보여주기식 행정을 멈추고 농민이 체감할 수 있는 근본대책을 내놔야 한다”며 “농민 없는 농정과 자경농 중심의 정책은 결국 임차농을 농지에서 내모는 결과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소비자 단체들도 연대의 목소리를 냈다.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 박인숙 공동대표는 “먹거리를 고를 때 시민은 이제 누가, 어떻게 농사짓는가를 묻는다”며 “농민 없는 친환경농업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한살림북서울생협 부호영 이사장은 “임차농의 생존은 곧 시민의 밥상과 직결된 문제”라며 “진짜 농민을 지키는 것이 지속가능한 먹거리의 출발점”이라고 덧붙였다.
참여 단체들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 실경작자 중심의 경영체 등록 제도 개선을 즉각 추진하고, 임차농 보호를 위한 농지법 개정 및 실태조사 실시를 촉구했다. 또한, 농지 임대를 활성화하고 친환경농업을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행정적·재정적 장치 마련을 요구했다.
특히 단체들은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송미령 장관이 “친환경 농업 10% 확대와 지주 단속 강화를 약속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현재의 정책 방향이 오히려 ‘임차농 단속 강화’로 왜곡되었다고 비판했다. 친환경 인증 농가의 70%가 임차농인 현실에서, 실경작자를 제도 밖으로 내모는 정책은 정부의 국정과제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회견을 마친 농민단체들은 “농민의 땀 위에서 지속가능한 먹거리가 만들어진다”며 “정부는 불법 지주의 이익이 아닌 진짜 농부의 생존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이들은 또한 “기후위기 시대의 지속가능한 농업은 농민의 생존권 보장에서 출발해야 하며, 그 출발점이 바로 실경작자 중심의 제도개혁”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임차농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현 상황에서 농민·소비자·시민사회가 함께 연대해 정부의 정책 전환을 촉구한 의미 있는 자리였다. 현장의 농민들이 다시 농지에서 땀 흘릴 수 있는 날이 언제 올지, 농식품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임미애 국회의원이 “직불금 부정 수급을 이유로 한 단속이 오히려 친환경 임차농을 농지에서 내모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살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