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라 기자
곽향기 서울시의원(국민의힘, 동작3, 가운데)이 9월 3일 열린 제332회 임시회 교통위원회 회의에서 서울교통공사 관계자에게 질의하고 있다. 곽 의원은 혈액암 집단 발병 사태와 관련해 내년도 예산 반영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조속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사진=서울시의회
[한국의정신문 김미라 기자]
서울지하철 노동자들 사이에서 혈액암 집단 발병이 확인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이를 예방하기 위한 예산이 내년도 서울시 예산안에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곽향기 서울시의원(국민의힘, 동작3, 교통위원회)은 지난 9월 3일 열린 제332회 임시회 교통위원회 회의에서 서울교통공사에 대한 질의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지적하며, 시와 공사의 책임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지난해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진 서울지하철 정비 노동자들의 혈액암 집단 발병 사태는 사회적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실태조사에서 2007년 이후 공사 차량·기계 분야에서 13명이 혈액암 진단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서울시는 2023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간 연구용역을 실시해 근본적인 예방책을 모색했다.
연구용역 최종 보고서(8월 확정)에 따르면, 혈액암 예방을 위해서는 ▲노후 장비 전면 교체 ▲발암물질 유발 공정 변경 ▲디젤 기관차 배터리 교체 등 대대적인 작업환경 개선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예산은 최소 208억 원 규모로 추산됐다. 그러나 곽 의원은 “용역 결과가 확정된 이후에도 서울교통공사는 제때 예산을 신청하지 않았고, 서울시가 편성한 내년도 예산안에도 관련 항목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서울교통공사의 심각한 재정 상황도 문제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 6월 말 기준 공사의 총부채는 7조 7,247억 원으로 전년 대비 3,774억 원이 증가했고, 부채비율은 94%를 넘어섰다. 특히 금융부채만 4조 7천억 원에 달해 올해 상반기에만 758억 원의 이자를 지급했으며, 이는 일평균 4억 2천만 원 수준이다. 상반기 손실액은 3,400억 원을 초과해, 당장 필요한 시설 개조 예산 200억 원조차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곽 의원은 “서울교통공사는 기후동행카드 비용 부담과 운임 현실화 등 핵심 정책에서 서울시 결정에 종속되어 있어 독자적인 재정 자율성이 부족하다”며, “재정난을 이유로 직원 건강을 위협에 방치한다면 이는 곧 시민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경고했다.
더 큰 문제는 대응의 소극성이다. 각 부처는 통상 7월에 차년도 예산안을 기획조정실에 제출하지만, 교통공사는 6월에 연구용역이 완료되고도 제때 예산 요청을 하지 않았다. 결국 8월 20일에서야 혈액암 예방 관련 예산을 서울시에 건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지난 1년간 공사 차원에서 추진한 실질적 개선 조치는 용역 수행과 20년 이상 된 부품 세척기 2대 교체뿐이어서, 현장 작업자들은 여전히 발암물질에 노출된 위험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서울교통공사의 혈액암 예방 관련 추진 실적을 보면, 연구용역(약 2억 5천만 원), 자문료·원가조사(1,700만 원), 노후 세척기 교체(약 3억 2천만 원) 등 총 집행액이 5억 9천만 원에 불과했다. 연구보고서가 권고한 대규모 개선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에 대해 곽향기 의원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서울 지하철 시스템이 인력의 건강과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시민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서울시는 공사와 함께 즉각적인 재정 지원책과 환경 개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곽 의원의 질의에 대해 백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아직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서울시와 긴밀히 논의 중”이라며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안전한 작업환경 조성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답변했다.
곽 의원은 끝으로 “서울교통공사의 재정 위기는 구조적 문제이자 시의 정책적 책임과도 직결돼 있다”며 “재정 압박을 이유로 직원 건강과 시민 안전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서울시와 공사가 머리를 맞대고 책임 있는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사안은 단순히 교통공사 내부의 복지 문제가 아니라, 시민 안전과 직결된 중대한 과제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이 예상된다. 향후 서울시와 교통공사가 어떤 후속 대책을 마련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