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기자
디지털 불평등 시대, AI교육의 새로운 격차를 경계하다. 이미지=미리캔버스제작
[한국의정신문 김현주 기자]
AI 시대의 교육은 더 이상 컴퓨터 한 대를 두고 ‘정보화 교육’을 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 학생들이 배우는 AI 활용 능력, 데이터 해석력, 알고리즘 이해력은 곧 사회 진입을 위한 필수 자산이 된다. 문제는 이러한 역량 습득 기회가 학생이 사는 지역, 가정의 경제 상황, 학교의 인프라 수준에 따라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부와 일부 시·도교육청이 AI 디지털 교과서, 메타버스 수업, AI 맞춤형 학습 플랫폼을 속속 도입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기기·네트워크 접근성이 부족한 학생, 전문성 있는 교사·콘텐츠가 없는 지역, 민간과 연계가 어려운 농산어촌 학교가 여전히 뒤처지고 있다.
이 격차는 단순히 학습 편의성의 차이가 아니라 미래 사회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권리의 차이로 이어진다. 우리는 지금 AI 교육의 ‘새로운 격차’를 목격하고 있다.
AI 교육 격차는 단순히 ‘기기 보급률’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는 기술 접근성, 교육 역량, 학습 경험이라는 세 가지 층위에서 복합적으로 발생하며, 이 격차가 누적될수록 학생 간 미래 기회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첫째, 디지털 접근성 격차다. 최신 사양의 학습용 기기와 안정적인 초고속 인터넷망을 갖춘 학생은 실시간 AI 실습,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분석, 메타버스 협업 활동에 원활히 참여할 수 있다. 반면, 노후화된 PC나 불안정한 네트워크 환경에 놓인 학생은 접속 속도 지연, 실행 오류, 그래픽 처리 한계 등으로 수업 몰입도가 떨어진다. 실제로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농산어촌 초·중학교의 AI 실습기기 보급률은 도시 학교 대비 약 63% 수준에 불과했다. 이 격차는 단순한 ‘편의성’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 내용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둘째, 교원 역량 격차다. 일부 교사는 AI 수업 설계,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 이해, 윤리 교육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학생의 비판적 사고와 문제 해결력을 길러주지만, 다수는 단기 연수 후 특정 AI 툴 사용법만 전수하는 데 그친다. 이런 경우 AI를 단순한 ‘시각 자료 생성기’나 ‘자동 채점기’로만 활용하게 되고, AI 활용의 본질적 가치와 한계에 대한 토론은 사라진다. OECD 역시 교원의 AI·데이터 리터러시 부족을 향후 10년간 교육 질을 위협하는 핵심 리스크로 경고한 바 있다.
셋째, 콘텐츠와 경험 격차다. 수도권과 광역시의 일부 학교는 대학·기업·연구소와 연계해 AI 해커톤, 데이터 분석 캠프, AI 윤리 토론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에 비해 중소도시·농어촌 학교는 교육청 주관의 단발성 행사 외에는 선택지가 거의 없으며, 심화 체험 기회도 제한적이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동일한 ‘AI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전혀 다른 수준과 깊이의 학습 경험을 하게 되고, 이는 장기적으로 진로 선택과 역량 형성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
이처럼 AI 교육 격차는 단순한 장비나 시설 차원이 아니라 학습 참여 기회, 교육의 질, 경험의 다양성 전반에서 나타나며,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디지털 세대 내부의 새로운 ‘계층 구조’를 고착화시킬 위험이 크다.
AI 교육에서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고 포용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은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핀란드의 ‘Elements of AI’ 프로그램은 AI 기초 지식을 모든 시민에게 제공하겠다는 국가적 비전을 담고 있다. 헬싱키대학과 기술기업 Reaktor가 공동 개발한 이 무료 온라인 강좌는 AI의 기본 개념, 활용 사례, 윤리적 쟁점 등을 폭넓게 다루며, 2024년 기준 전 세계 100만 명 이상이 수강했다. 핀란드는 이를 영어뿐 아니라 다국어로 제공해 비영어권 국가에도 확산시키고 있으며, 유럽연합(EU) 차원에서도 디지털 리터러시 확산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AI4ALL이 대표적인 포용형 AI 교육 사례로 꼽힌다. 2017년 스탠퍼드대에서 시작된 이 비영리 프로그램은 여름 캠프와 멘토링, 윤리 토론, 프로젝트 기반 학습을 결합해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AI 이해도를 높인다. 특히 여성, 소수인종, 저소득층 학생을 적극적으로 모집해 AI 분야 다양성을 확대하고 있으며, 2024년 현재 미국 전역 20여 개 대학과 협력하여 운영되고 있다. 이를 통해 AI 윤리와 사회적 영향까지 아우르는 ‘전인적 AI 교육’ 모델을 제시했다.
국내에서도 디지털 불평등 완화를 위한 공신력 있는 프로그램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의 ‘서울형 AI 교육 플랫폼’은 2024년 개편을 통해 학생·교사·학부모 모두가 활용할 수 있는 무료 AI 학습 콘텐츠를 제공하고, 인터넷 접근이 어려운 학생을 위해 오프라인 교재와 찾아가는 연수를 병행하고 있다. 또한 경기도교육청의 ‘찾아가는 AI·SW 교육버스’는 농산어촌 및 도서벽지 학교를 직접 방문해 AI 기초 체험, 코딩 실습, AI 윤리 교육을 지원하고 있으며, 2024년 한 해에만 120여 회 운영됐다. 이러한 시도들은 지역과 계층에 상관없이 AI 학습 기회를 보장하는 실천적 모델로 기능하고 있다.
이처럼 핀란드와 미국, 그리고 국내 시·도교육청의 사례는 AI 교육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접근성·포용성·윤리성을 동시에 고려한 정책 설계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기기 보급을 넘어, 맞춤형 콘텐츠와 지속적인 학습 지원,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우선 고려하는 교육철학이 뒷받침될 때 실질적인 디지털 포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처럼 AI 교육의 격차는 단순한 학습 성과의 차이를 넘어, 사회 전반의 불평등 구조를 고착화할 수 있는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다. 따라서 문제 진단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정부와 교육청, 지자체, 그리고 민간이 함께 움직이는 다층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전략적 방향을 제안한다.
첫째, 디지털 인프라 불평등 해소가 최우선 과제다. AI 교육의 기반은 결국 안정적인 디지털 환경과 장비에서 출발한다. 아직도 농산어촌과 일부 도시 저소득 지역에서는 고성능 컴퓨터, 고속 인터넷, 최신 소프트웨어 접근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정부와 지자체는 학교의 네트워크 인프라 업그레이드, AI 교육용 디바이스 지원, 지역 공공 도서관·마을학습센터의 디지털 학습 공간 확충을 병행해야 한다. 특히 학교 밖 배움터에도 동일한 수준의 장비와 환경을 제공해, 지역과 소득에 따른 ‘학습 도구 격차’를 최소화해야 한다.
둘째, 교원 AI 역량을 높이는 ‘마이크로자격+코칭’ 연수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이는 짧고 집중적인 모듈 학습으로 작은 성취 단위를 인증(마이크로자격)하고, 이를 즉시 수업 현장에 적용하도록 설계한 모델이다. 기초–응용–심화 3단계 과정을 통해 AI 기본 개념, 교과 연계 수업 설계, 데이터 분석, AI 윤리 교육 등을 폭넓게 다룬다. 각 모듈 이수 시 디지털 배지를 부여해 교사의 성장 과정을 시각화하며, 연수 이후 전문 코치가 수업 적용을 돕는 ‘현장 밀착형 피드백’이 이어진다. 이를 통해 교사는 학습한 내용을 실습과 포트폴리오로 완성하고, 국가 표준 모듈과 지역 특화 콘텐츠를 병행해 전국 표준성과 지역 맞춤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셋째, 지역 간 AI 교육 격차를 줄이는 공동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시·도교육청별로 분산된 AI 교육 콘텐츠를 표준화된 형식으로 공유하고, 우수한 수업사례와 교재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 차원의 개방형 플랫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교육청과 학교, 마을교육공동체가 동일한 자료 기반 위에서 협력하고, 지역별 강점을 살린 공동 프로젝트가 가능해진다.
넷째, 학생·학부모 대상 AI 리터러시 대중화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AI 교육이 교사와 학생의 교실 안에만 머무르면, 가정과 지역사회에서의 지속성이 떨어진다. 도서관·마을센터·비영리단체와 연계해 ‘가족 AI 체험교실’ ‘세대별 AI 토론회’ 등 생활 속 AI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AI에 대한 이해와 윤리 감수성을 전 세대가 함께 키울 수 있다. 특히 학부모를 AI 학습 파트너로 전환시키는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장기적 AI 학습 지속성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AI 교육 격차는 단순한 기술 격차나 학교 간 자원 불평등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곧 교육 정의(Educational Justice), 더 나아가 미래 세대의 삶의 기회와 직결되는 사회 정의의 문제다. 지금 우리가 설계하는 AI 교육 체계가 일부 학교와 학생만의 전유물이 된다면, AI가 만들어낼 미래 사회의 양극화는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불평등보다 훨씬 날카롭고 깊어질 것이다.
모든 아이가 같은 출발선에서 AI 시대를 준비할 수 있도록, 기기·인프라·교원·콘텐츠·윤리 교육이 빈틈없이 연결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여기서 AI 교육은 선택받은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누려야 할 보편적 학습 권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는 단지 한 세대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내리는 정책 결정과 교육 실천은 다음 세대가 살아갈 사회의 구조를 만든다. 그렇기에 지금이 바로, ‘기회 불평등’을 ‘학습 평등’으로 전환하는 역사적 결단의 시점이다. 교육이 사회를 바꾸는 힘을 가진 유일한 수단이라면, AI 시대의 교육은 그 힘을 더 강력하고 공정하게 발휘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기술의 소비자가 아니라 창조자가 되도록, 그리고 미래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주체로 성장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AI 교육이 지향해야 할 궁극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