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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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정신문 김을호 기자]
권력은 단순히 지배의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본능적으로 ‘지속’을 추구한다. 정치권이든, 기업이든, 혹은 조직 내 리더십이든 모든 권력은 스스로를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한 전략을 내재하고 있다. 권력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도전받는 것이며, 이로 인해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 작동한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권력을 “타인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능력”이라 정의했다. 그러나 진정한 권력은 단순한 관철의 능력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을 정당화하고, 체계화하며, 때로는 미화하면서 생존을 도모한다. 오늘 우리는 이 ‘권력의 생존 본능’이 어떻게 사회를 안정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왜곡시키기도 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모든 권력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외부의 압력, 내부의 반란, 구조적 위기 등으로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이런 위기 가능성은 권력으로 하여금 생존 전략을 세우게 만든다. 그 전략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법과 제도를 통한 정당화다. 권력은 자신의 지위를 법적으로 고착시키고, 경쟁자를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둘째, 군사력과 강제력의 동원이다. 고대의 왕권에서부터 현대의 국가권력까지 물리력은 권력의 가장 원초적 방패였다. 셋째, 대중의 지지 확보다. 권력은 언론, 교육, 문화 등을 통해 자신을 미화하고 정당화한다. 넷째, 경제적 기반 강화다. 경제적 성과는 곧 정치적 정당성으로 이어지며, 권력의 유지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권력이 스스로를 지키려는 노력은 때로는 사회적 안정과 발전을 가져온다. 안정된 권력 구조는 정책의 일관성과 제도의 지속성을 보장하며, 시민에게 예측 가능한 환경을 제공한다. 이는 정치뿐만 아니라 기업과 조직 운영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이 생존 본능은 부작용도 낳는다. 장기 권력은 견제 기능을 약화시키고, 부패와 권력 남용을 부른다. 언론 통제, 정치적 보복, 경제권력과의 결탁 등이 그 예다. 더욱이 일부 권력은 사회적 갈등을 의도적으로 조장하기도 한다. 내부 결속을 유도하거나 권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설정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나, 결국 사회적 분열과 신뢰 붕괴를 초래한다.
권력은 단순히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해야 할 ‘관리의 대상’이다. ‘정치란 권력을 누가,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라는 말처럼, 권력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그 사용 방식과 작동 구조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와 개입이 필수적이다.
먼저, 언론과 시민 사회의 감시 기능이 핵심적이다. 권력은 투명한 환경에서는 쉽게 오만해질 수 없다. 그러나 감시의 눈이 흐려지는 순간, 권력은 그 틈을 타 비대해지고, 본질을 잃는다. 언론은 단순한 정보 전달의 수단이 아니라, 권력의 일탈을 드러내고 공론화를 통해 책임을 묻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이다. 아울러 시민단체와 공익 제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감시 활동도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감시는 과거처럼 소수 전문가만의 일이 아니라, 시민 개개인의 권리이자 의무로 자리 잡고 있다.
둘째, 권력의 분산과 견제 장치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민주주의에서 삼권분립은 단지 권한을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각 권력이 서로를 통제하고 감시하는 역학 구조를 만들어낸다. 입법·행정·사법의 권력 간 균형은 권력이 어느 한 곳에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이다. 더불어 지방분권, 독립기관의 설치, 공직자 윤리감사제도 등도 권력 남용을 방지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정치권에서는 비례성과 책임성이 확보된 선거제도 개혁, 투명한 정치자금 운용 등이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셋째, 시민의 정치 참여와 책임 의식 강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제도가 있어도,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시민이 투표하고, 의견을 개진하며, 공공 문제에 관심을 갖는 그 자체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이다. 권력은 공백을 두려워한다. 시민이 그 자리를 지키지 않으면, 권력은 스스로를 강화하며 통제 불가능한 형태로 확장된다. 반대로 시민이 깨어 있는 사회에서는 권력도 긴장하고 조심하게 된다.
결국 건강한 권력은 시민의 눈으로 단련된다. 감시받는 권력만이 책임질 줄 알고, 통제되는 권력만이 공공성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가 권력의 생존 본능을 이해하고,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이유는 바로 권력이 우리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수단으로 기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권력은 살아남으려는 본성으로부터 나온다’는 통찰은 정치권뿐 아니라 현대 사회 전반을 바라보는 핵심 키워드다. 우리는 권력이 어떻게 자신을 정당화하고, 유지하며, 때로는 왜곡하는지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건강한 민주주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무조건 경계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비판적으로 감시하고, 사회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지켜낼 때, 권력은 비로소 공공의 이익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