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을호 기자
Josh Sorenson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976863/
[한국의정신문 김을호 기자]
군중은 단순한 사람들의 집합이 아니다. 특정한 환경과 조건이 충족될 때, 군중은 단순한 모임을 넘어 감정과 행동을 공유하는 강력한 집단으로 진화한다. 특히 ‘밀집된 공간’은 군중이 가장 선호하는 상태이며, 이로 인해 강한 감정적 에너지와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군중은 왜 밀집 상태를 사랑하는가? 이 물음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우리 사회가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조율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심리적 안정과 소속감, 감정의 전염까지
밀집 상태는 군중 내부의 심리적 안정을 강화하는 조건이다. 사람들은 가까이 모여 있을 때 불안감이 줄어들고,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특히 시위, 공연, 스포츠 경기 등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좁은 공간 안에서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개인은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확신하며 더욱 강한 신념을 갖게 된다.
이와 함께 주목할 점은 감정의 전염성이다. 흩어진 감정보다는 밀집된 감정이 훨씬 강하게 전파된다. 응원과 분노, 환희와 절망은 모두 밀집된 군중 속에서 배가된다. 결국, 밀집은 단순한 물리적 상태를 넘어 심리적 증폭기 역할을 한다.
군중 밀집의 긍정적 힘, 사회를 움직이다
역사는 군중의 밀집이 사회적 변화를 이끈 사례들로 가득하다. 민주화 운동, 노동자 권리 투쟁, 환경 보호 운동 등에서 밀집된 군중은 단순한 수를 넘어 강력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파했다. ‘흩어져 있으면 약하지만, 모이면 강하다’는 진리는 집단의 밀도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특히 밀집된 군중은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시각화한다. 같은 인원이더라도 넓게 흩어져 있을 때보다 한 장소에 꽉 들어찬 모습은 훨씬 더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는 미디어와 정치권이 민심을 인식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감정의 과열과 획일화라는 그림자도 존재한다
모든 밀집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군중이 지나치게 밀집될 경우, 감정의 과열과 비이성적 행동이 촉발될 위험이 커진다. 군중 속 개인은 익명성에 기대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며, 이러한 흐름은 역사적 폭동이나 대규모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져왔다.
또한, 군중 내부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묻히고, 다수의 목소리가 유일한 진리처럼 포장되기 쉽다. 이는 집단 극화 현상으로 이어지며, 점차 더 극단적인 주장과 행동을 낳는다. 외부에 대한 배타성이 강화되면서 사회 내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군중 속 개인이 지켜야 할 태도
군중은 사회 변화의 중요한 동력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개인이 자신의 이성을 지키지 못한다면, 집단의 힘은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 그러므로 군중 속 개인은 다음 세 가지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첫째, 비판적 사고를 유지해야 한다.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자신의 판단이 감정에 휘둘리고 있는지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다양한 의견에 귀 기울이는 열린 태도를 갖춰야 한다. 군중 내부의 단일화된 사고에 맞서 이견을 존중하는 자세가 건강한 집단 문화를 만든다.
셋째, 감정적 선동에 대한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퍼지는 말과 소문, 자극적인 연설 앞에서 정보의 진위를 판단하고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
군중의 힘,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군중은 밀집을 사랑한다. 그 안에서 안정감을 얻고, 감정을 공유하며,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키운다. 그러나 그 힘이 분출될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 우리는 그 파괴력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이 시대에도, 거리와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의 함성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
그 함성이 건강하고 의미 있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집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개인의 이성과 책임감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집단의 힘을 미래로 이어가는 가장 튼튼한 다리이기 때문이다.
한국의정신문 칼럼니스트
숭실대 교수 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