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라 기자
그래픽=김미라 기자
[한국의정신문 김미라 기자]
AI가 지식을 대신하는 시대, 교육은 어디로 가야 할까. 더 이른 선행과 더 치열한 경쟁이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분명해졌다. 이제 대한민국 교육정책의 중심축은 ‘얼마나 빨리 배우는가’에서 ‘얼마나 깊이 사고하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그 변화의 최전선에 서울특별시가 서 있다.
서울의 독서 정책은 단순한 문화 장려가 아니다. 이는 문해력 저하와 사교육 과열, AI 시대 인간 역량 약화라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도시 차원의 해법이다. 서울은 독서를 학교 안의 과제가 아니라, 시민의 일상 속 경험으로 끌어올렸다. ‘책을 읽게 하는 정책’이 아니라 ‘책을 만나게 하는 도시’를 선택한 것이다.
서울 독서 정책의 상징은 단연 서울야외도서관이다.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청계천 일대는 더 이상 통과 공간이 아니다. 이곳은 시민들이 앉아 책을 펼치고, 머무르며 사유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도서관은 건물 안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도시는 스스로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이 됐다. 이른바 ‘건물 없는 도서관’이라는 개념은 독서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실험이었다.
정책 성과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서울야외도서관은 개장 이후 누적 방문객 800만 명을 넘어섰고, 2025년에는 시민이 직접 뽑은 ‘서울시 10대 정책’ 1위에 오르며 압도적인 공감도를 입증했다. 이는 독서가 특정 계층의 문화가 아니라, 시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일상 문화로 확장됐음을 보여준다.
서울의 독서 정책은 교육정책과 맞물리며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독서·토론·인문교육을 핵심 전략으로 삼아 ‘책 읽는 학교’ 정책과 심층 독서·토론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독서는 국어 교과의 일부가 아니라, 모든 교과에서 사고를 확장하는 방법이 되고 있다. 책을 읽고, 쟁점을 분석하고, 자신의 언어로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역량을 학교 안에서 키우는 길이다.
서울 독서 정책의 가장 큰 힘은 ‘연결’에 있다. 학교와 도시, 교육과 문화, 행정과 시민의 일상이 독서를 매개로 이어진다. 독서는 평가 수단이 아니라 공공의 가치가 되고, 사교육의 영역으로 밀려났던 사고력 교육은 다시 공교육과 도시 정책의 중심으로 돌아온다.
다만, 서울의 독서 정책이 일시적 성과에 머물지 않고 지속가능한 생태계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보완 과제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독서 인프라의 통합은 그중 하나다. 공공도서관, 전자책, 오디오북, 교육청 독서 플랫폼이 분절된 구조에서 벗어나 하나의 통합된 독서 서비스로 연결될 때, 시민의 접근성과 정책 효과는 배가될 수 있다.
아울러 야외 중심 독서 공간의 한계를 보완하는 계절·기후 대응 전략도 중요하다. 사계절 활용 가능한 실내·반실내 독서 공간, 야간 독서 프로그램의 정례화, 주거지 인근 소규모 독서 쉼터 확충은 독서를 일회성 체험이 아닌 생활 습관으로 정착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생애주기별 맞춤 독서 정책 역시 한 단계 더 진화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을 위한 심화 독서와 토론, 중장년을 위한 평생 독서, 시니어 문해력 강화를 아우르는 정책은 ‘모두를 위한 독서 도시’라는 서울의 비전을 완성하는 핵심 요소다. 여기에 학교와 공공도서관, 지역 서점이 함께 참여하는 시민 독서 공동체 모델이 결합된다면 독서 정책의 사회적 파급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서울의 사례는 분명한 질문을 던진다. 독서 정책은 교육 정책인가, 문화 정책인가. 서울은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하고 있다. 둘은 분리될 수 없으며, 함께 갈 때 가장 강력해진다는 것이다. 도시가 먼저 책을 열었고, 시민이 그 자리에 앉았을 때 교육은 비로소 삶과 연결된다.
‘2026 책 읽는 대한민국’은 하나의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서울이 연 첫 장은 이제 지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다음 칼럼에서는 또 다른 지역이 어떤 방식으로 독서를 통해 교육과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독서 정책은 곧 그 지역의 철학이며, 대한민국 교육의 다음 방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