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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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정신문 김현주 기자]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영어와 국어 모두에서 역대 최저 수준의 1등급 비율과 높은 표준점수가 기록되며, 사실상 ‘초(超)불수능’으로 평가되었다. 특히 국어 영역은 독서 지문의 난이도 상승과 고난도 사고형 문항이 대거 출제되면서 문해력과 사고력이 학습 성취를 극명하게 갈랐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 과목 만점자는 전국 5명에 불과했으며, 그중 3명이 일반고 출신이라는 사실은 한국 교육 현장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준다.
이 성취는 단순한 개인 역량의 우연이 아니라, 독서 기반 사고력을 중심에 둔 학습 환경과 교육 경험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점에서 정책적 의미가 크다. 김영호 국회 교육위원장이 제시한 “독서 국가로의 교육 대전환” 비전은 바로 이 현장의 변화를 국가 전략으로 끌어올릴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올해 수능에서 국어 1등급 비율은 급감했고, 만점자 수도 지난해의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독서 지문은 정보량이 많고 개념 구조가 복잡했으며, 하나의 개념을 여러 층위에서 해석해야 정답에 도달할 수 있는 문항이 다수 출제되었다. 이는 표면적 독해나 단순 문제풀이 능력만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유형이었다.
영어 영역 역시 절대평가 도입 이후 최저의 1등급 비율(3.11%)을 기록하며 높은 변별력을 보였다. 특히 올해 영어는 단순 문장 해석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해석을 바탕으로 글의 논리 구조를 파악하고 숨겨진 함의를 추론해야 하는 문항이 크게 늘었다.
문항 자체는 복잡한 어휘나 문법보다는, 글의 전개 방식 파악·필자의 의도 추론·문맥 기반 의미 해석을 요구하는 ‘사고형 독해’에 가까웠다. 즉, 영어조차 언어 능력보다 문해력·추론력·맥락 이해력을 중심으로 평가가 이동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독서력을 충분히 갖춘 학생에게는 기회가 되었지만, 읽기 경험이 부족한 학생에게는 결정적 난관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올해 수능은 국어·영어 모든 영역이 ‘읽고, 구조를 파악하고, 의미를 재조합해 새로운 결론을 도출하는 능력’, 즉 깊이 있는 독서 기반 사고력을 본격적으로 요구한 시험이었다.
이는 교육위원장이 지적한 AI 시대의 문제—깊이 읽기의 붕괴, 사고력 저하, 문해력 격차 확대—가 단순한 우려가 아니라 실제 평가에서 이미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만점자 5명 중 3명이 일반고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세 학생 모두 언론 인터뷰에서 “평소 책을 많이 읽었다”는 공통점을 언급했다. 이는 올해 국어·영어 영역에서 요구된 고난도 독해·추론 문제—지문의 논리 구조 파악, 함의 해석, 해석 이후의 의미 재조합—을 해결하는 데 독서 경험이 핵심적 기반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올해처럼 국어·영어 모두에서 긴 지문과 고도의 논리 추론을 요구한 상황에서는, 문해력의 차이가 곧 성취의 차이로 이어졌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서울 광남고의 왕정건 학생은 2년 연속 만점자를 배출한 학교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광남고는 독서 토론, 신문 기사 요약, 융합사고 활동 등 학교 차원에서 독서 기반 사고력을 기르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해 온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단순한 비교과 프로그램을 넘어 학생들의 읽기·해석·논리 구성 능력을 자연스럽게 확장시키는 학교 문화로 자리 잡았다.
왕정건 학생이 올해와 같은 고난도 독서 중심 시험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학교 프로그램과 개인의 꾸준한 학습 태도가 맞물린 구조적 토대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전주한일고의 이하진 학생은 초·중학교 시절 스마트폰 없이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독서 중심의 생활 패턴을 형성했다. 그는 문제를 “한 가지 방식이 아니라 여러 방식으로 접근해 보고 스스로 문제를 만들며 사고를 확장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독서를 통해 축적된 이해력과 추론력이 있어야 가능한 학습 방식으로, 디지털 절제와 독서 습관의 결합이 고난도 문항을 해결하는 사고의 유연성을 키웠다는 점을 보여준다.
광주 서석고 최장우 학생은 광주에서 10년 만에 재학생 수능 만점자로 이름을 올렸다.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 온 경험 덕분에 국어·영어 독해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문제풀이 기술보다 근본 개념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학습 방식을 꾸준히 유지해 왔으며,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 학교의 체계적 학습 시스템을 적극 활용했다. 학생회 활동과 광주학생의회 의장 경험을 통해 기른 논리적 표현·토론 능력 역시 시험장에서 사고를 정리하고 긴장을 통제하는 데 실질적인 힘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세 학생의 사례는 서로 다른 지역, 다른 학교 환경에서 학습했음에도 독서 경험이라는 공통된 바탕 위에 성취가 쌓였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광남고는 학교 차원의 프로그램이 사고력 체계를 설계해 주었고, 전주한일고 이하진 학생은 독서 습관과 디지털 절제가 사고의 집중도를 강화했으며, 서석고 최장우 학생은 독서 기반 기초 체력에 학교의 체계적 지원과 자기주도적 학습 태도가 결합되었다.
이번 수능에서 일반고가 보여준 성과는 한 가지 방식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러나 세 학생 모두가 공통적으로 말한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실은, 독서가 장기적인 학습 역량을 형성하는 가장 강력한 기반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학교 차원에서 이를 문화로 만들었을 때, 광남고와 같이 그 효과는 더욱 확실하게 나타났다.
김영호 교육위원장은 EBS 인터뷰에서 “독서 국가로의 교육 대전환”이라는 국가 전략을 제시하며, 독서를 단순한 권장 활동이 아니라 국가 교육 철학의 중심축으로 재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제안한 변화는 특정 연령대에 한정된 정책이 아니라, 유치원–초등–중등–고등–성인기까지 이어지는 생애 전 주기 독서 체계의 재구성이다.
유치원 교육을 ‘독서 유치원’으로 전환하고, 초등학교에 독서 특성화 모델을 도입하며, 중학교 자유학기제를 ‘독서 학기제’로 바꾸는 구상은 읽기 능력을 학습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또한 고등학교에서는 토론·비판적 읽기 강화, 성인기에서는 평생학습 기반 독서 정책 확대, 나아가 국가고시나 공무원 시험에서도 독서 능력을 평가 요소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은, 독서를 국가 경쟁력의 핵심 역량으로 규정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올해 수능 결과는 이러한 구상이 추상적 이상이 아니라, 현장에서 이미 그 당위성이 입증되고 있는 현실적 대응책임을 보여준다. 국어·영어에서 고난도 독해와 복합 추론이 대거 출제되면서 독서력이 성적을 갈랐고, 실제 만점자들의 학습 기반 역시 독서 경험과 깊이 읽기 습관이었다.
이는 국가가 독서를 단순한 권장사항으로 둘 경우, 학교·가정·지역의 환경 격차에 따라 문해력과 사고력의 격차가 더욱 심화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만점자 사례는 “독서 중심 학력 체제”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독서 능력이 특정 학생의 개인적 장점이 아니라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하는 기본 학습 역량이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독서 교육의 강화가 곧 국가 역량 강화로 이어진다는 점을 현실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광남고의 사례는 일반고에서도 독서 기반 학습 환경이 충분히 구축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광남고는 독서 토론, 신문 기사 요약, 융합사고 활동을 정규 수업과 방과 후 활동, 방학 프로그램 등과 연계하여 운영하며, 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일정 권수 이상의 책을 읽고 토론·발표·글쓰기로까지 이어지도록 구조를 설계해 왔다.
이제 이러한 시도가 일부 학교의 자율적 선택에 머물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최소 교육 기준으로 격상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방향이 요구된다.
• 모든 초·중·고에서 학기별 필수 독서량과 독서·토론·글쓰기 활동을 포함하는 ‘독서 기반 교육과정 가이드라인’ 제시
• 창의적 체험활동, 자율활동, 동아리 활동 안에 독서 토론·기사 요약·비판적 읽기 활동을 필수 요소로 포함
• 학교 평가 및 교육청 평가 지표에 독서 기반 프로그램 운영 여부와 질적 수준을 반영
이를 통해 독서 활동이 행사성 프로그램이나 캠페인에 그치지 않고, 모든 학교가 갖춰야 할 기본 학습 인프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전주한일고 이하진 학생의 사례는 디지털 자극을 최소화하고 읽기 중심의 생활 습관을 갖는 것이 학습 집중력과 사고력 유지에 실질적 효과가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제 이러한 디지털 절제는 더 이상 가정의 선택이나 개인의 의지에만 맡겨진 문제가 아니다. 국회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2026학년도 신학기(내년 3월)부터 전국 초·중·고 모든 교실에서 수업 중 스마트기기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도록 했다. 이는 학생의 집중력 저하와 스마트폰 과몰입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법적 안전장치다.
그러나 현장 반응은 단순히 “찬성” 또는 “반대”로 갈리지 않는다. 법안 시행은 필요하지만, 학교 현장에 새로운 혼란과 민원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실제로 여러 교사들은 “스마트폰을 압수하면 인권 침해라고 항의하던 민원이, 이제는 ‘왜 어떤 교사는 허용하고 다른 교사는 금지하느냐’는 방식으로 바뀔 것”이라고 걱정한다. 학교 단위에서 이미 존재하던 갈등이, 법적 조항이 도입되면서 형평성과 재량 해석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 역시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과도한 통제”라고 느끼기도 한다.
교칙은 ‘스스로 지켜가는 규범’으로 받아들이지만, 법은 ‘강제’로 받아들여 거부감을 느낀다는 의견도 있다. 일부는 “오히려 졸거나 학교를 나오지 않게 되는 학생도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대로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은 그동안 학교 내 자율 규제가 실효성이 부족했다며, “면학 분위기를 위해선 법적 강제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강하게 제시한다.
이처럼 교실 내 스마트기기 제한은 교육적 필요성과 민주적 정당성, 학생의 자율권, 교사의 권한 보호가 모두 걸린 복합적 사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안 시행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이 조치가 학교 현장과 사회 전체에 자연스럽게 안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다.
첫째, 학교는 학칙 정비와 보관·관리 체계를 명확하게 구축해야 한다. 학생·학부모·교사가 모두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한 기준과 절차가 마련될 때만 불필요한 민원과 갈등을 줄일 수 있다.
둘째, 스마트폰을 교실에서 치웠다고 해서 교육이 자동으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핵심이다. 이 시간을 독서·토론·사유의 시간으로 전환해야 한다. 법이 마련한 ‘기기의 부재’가 곧바로 ‘사유의 존재’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학교 밖에서는 여전히 스마트기기 사용이 일상적이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금지가 아니라, 알고리즘 이해·자기조절 전략·SNS 과몰입 예방·디지털 공존 역량을 포함한 통합적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다. 즉, 법은 최소한의 장치이며, 교육은 그 장치를 실제 역량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넷째, 사회 전체가 “학교에서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문화를 공유해야 한다. 새로운 법이 성공하려면, 법적 규범을 넘어 사회적 규범·교육적 상식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이는 단순 통제가 아니라, 학생 스스로가 “내 시간과 집중력을 지키는 일”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돕는 과정이 병행되어야 한다.
결국 이번 개정은 디지털 절제가 선택적 교육을 넘어 법에 의해 보장된 공적 과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법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법이 학생들의 시간을 비워주고, 학교와 사회가 그 시간을 책·사람·대화·사유로 다시 채우는 데 성공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바로 디지털 절제가 ‘독서 국가’ 비전으로 이어지는 교육정책의 다음 단계인 것이다.
광남고, 전주한일고, 서석고 사례는 학교 안에서의 노력만으로도 많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학교 내부 자원만으로는 독서 환경을 충분히 확장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드러낸다.
따라서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학교와 지역을 잇는 독서 생태계 연계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정책 방향이 가능하다.
• 기초지자체 단위로 ‘지역 독서 허브 도서관’을 지정하고, 인근 학교와 연계한 독서 프로그램·저자 특강·청소년 독서 동아리 운영
• 학교 도서관–공공 도서관–작은 도서관을 네트워크로 묶어,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도 연속적인 독서·토론 경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 지원
• 지자체 차원에서 독서 관련 예산을 단발성 행사보다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독서 동아리, 토론회, 청소년 독서캠프 등)에 중점 투입
이렇게 되면 독서는 학교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활동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생활 문화가 된다. 이는 김영호 교육위원장이 말한 ‘독서 국가’를 ‘독서 생태계 국가’로 확장하는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광남고 왕정건, 전주한일고 이하진, 광주 서석고 최장우 학생은 서로 다른 지역과 학교, 서로 다른 교육 환경에서 학습했지만, 모두가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는 공통된 토대 위에서 성취를 쌓았다. 이 세 학생의 성취는 개인적 재능이나 특정 학교의 경쟁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들의 말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결국 독서 경험이 축적해 준 언어 능력, 사고의 깊이, 문제를 바라보는 구조적 시각이다.
광남고는 학교 차원의 독서·사고력 프로그램을 통해 사고의 골격을 세워 주었고, 전주한일고 이하진 학생은 독서 습관과 디지털 절제를 통해 집중력과 사고의 선명도를 유지했다. 서석고 최장우 학생은 독서 기반 기초 체력에 학교 시스템, 자기주도성, 학생회 활동을 결합하며 성취를 완성했다.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그 바탕에는 독서라는 인지적 체력이 공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올해 불수능에서 만점자 학생들이 보여준 성과는 한 가지 방식으로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독서는 학업 성취의 주변 요소가 아니라, 모든 학습을 지탱하는 ‘기초 체력’이자 국가가 보호하고 키워야 할 공적 역량이라는 점이다. 독서력 위에 환경과 프로그램, 개인의 노력과 습관이 어우러질 때 사고 기반 학습은 비로소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세 학생의 사례는 한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보여준다. 학생 개인의 성취를 넘어, 국가가 독서가 가능한 환경을 설계하고, 학교가 사고력을 기르는 구조를 마련할 때, 더 많은 학생들이 깊이 읽고 깊이 생각하는 학력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다. 독서는 한 사람의 성공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독서 생태계를 갖춘 나라는 더 큰 사고력, 더 깊은 시민성, 더 탄탄한 미래 역량을 가진다.
이제 한국 교육은 그 변화의 문턱 앞에 서 있다. 독서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가 보장해야 할 미래의 기본 조건이라는 사실을 다시 새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