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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김현주의 교육ON] AI가 글을 쓰는 시대, 우리는 무엇으로 사람을 평가할 것인가? - 일본 ‘자기소개서 폐지’가 한국 교육과 평가에 던지는 질문
  • 기사등록 2025-12-28 22:30:21
  • 기사수정 2025-12-28 22: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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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가 글을 쓰는 시대, 우리는 무엇으로 사람을 평가할 것인가? / 그래픽=김현주 기자

[한국의정신문 김현주 기자]


생성형 인공지능이 일상화된 시대, ‘글’이 더 이상 사람을 설명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고 있다. 최근 일본 기업들이 잇따라 자기소개서 기반 서류전형을 폐지하고, 지원자 전원 면접이라는 파격적인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는 소식은 단순한 채용 트렌드 변화가 아니다. 이는 AI 시대에 평가의 기준 자체를 다시 묻는 구조적 전환에 가깝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로토제약이다. 로토제약은 2026년 졸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한 신입 채용에서 기존의 ‘엔트리 시트(자기소개서)’를 완전히 없앴다. 대신 ‘엔트리 미트(Entry Meet)’라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지원자는 장문의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필요 없이 기본 정보만 등록하면 되고, 지원 의사가 있는 모든 학생과 회사가 15분간의 온라인 대화를 반드시 진행하는 구조다. 글로 거르는 대신,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을 원칙으로 삼은 것이다.


이 제도는 단순히 면접을 앞당긴 것이 아니다. 로토제약은 “AI 시대에 잘 쓴 글은 더 이상 개인의 성향이나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생성형 AI가 보편화되면서 누구나 매끄럽고 완성도 높은 자기소개서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에서, 글은 더 이상 변별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판단이다. 기업이 보고자 했던 것은 문장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사고의 방향, 태도, 열정, 그리고 조직과의 ‘결’이었다.


로토제약이 강조한 또 하나의 이유는 ‘미스매치 줄이기’였다. 수많은 학생이 몇 시간씩 공들여 자기소개서를 쓰지만, 실제로는 회사 문화와 맞지 않아 조기에 이탈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모든 지원자와 먼저 만나 대화를 나누는 방식은, 기업이 사람을 보는 과정이자 동시에 지원자가 회사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제도를 도입한 이후, 지원자의 만족도와 기업 이해도가 함께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제기되고 있다.


이 선택은 로토제약만의 일회적 실험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여러 기업이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나카니시제작소는 서류전형을 없앤 뒤 지원자 수가 오히려 증가했고, 소프트뱅크와 요코하마은행은 자기소개서 대신 영상 기반 평가와 대면 확인을 결합한 방식으로 전환했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AI를 금지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평가의 중심을 다시 ‘사람이 드러나는 장면’으로 옮겼다는 점이다.


이 흐름은 한국 교육과 평가에 매우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학교와 대학은 사고력과 성찰을 평가하기 위해 글쓰기 과제를 핵심 도구로 활용해 왔다. 수행평가, 보고서, 자기소개서형 과제는 학생의 생각을 확인하는 장치였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일상화된 지금, 그 글이 어디까지 학생의 사고를 반영하는지 판단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대규모 수강 과목이나 비대면 평가 환경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선명해진다. 최근 국내 주요 대학에서도 온라인 시험과 과제를 둘러싼 생성형 AI 부정행위 논란이 이어졌다. 이는 특정 대학이나 학생의 문제가 아니라, 기존 평가 방식이 기술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조적 신호에 가깝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해법의 방향이다. 일본 기업들이 선택한 길은 ‘AI 배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AI 활용을 전제로 하되, 평가 질문을 바꾸고 평가 장면을 이동시켰다. 글로 제출받는 대신 말로 설명하게 하고, 결과물보다 사고 과정과 상호작용을 보며, 단답형 답변보다 맥락을 묻는 질문을 던졌다. 이는 곧 결과 중심 평가에서 과정·대화·관계 중심 평가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글쓰기 과제를 없애자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글을 ‘제출물’이 아니라 ‘대화의 출발점’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학생이 작성한 글을 토대로 구술 설명을 요구하고, 질문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하며, 협업 상황에서의 태도와 사고 전개를 함께 살펴보는 방식이 결합될 때, AI는 부정행위의 도구가 아니라 사고를 확장하는 학습 도구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결국 일본의 자기소개서 폐지는 채용 제도의 변화가 아니라, AI 시대 인간 평가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선언에 가깝다. 그리고 이 선언은 지금 한국 교육이 마주한 질문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리고 그 평가가 학생을 어떤 방향으로 성장시키는가라는 질문이다.


AI는 글을 써줄 수 있지만, 질문 앞에서의 망설임과 사고의 흔적, 타인의 말에 반응하는 태도, 책임 있는 판단까지 대신해 주지는 못한다. 교육이 해야 할 일은 그 지점을 더 또렷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일본 기업들의 선택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AI가 능력을 평준화하는 시대일수록, 교육과 평가는 인간을 더 깊이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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